법에 적힌 숫자는 60일입니다. 현장에서 나온 숫자는 507일이었습니다. 지난 9월 8일 황희 의원 등 10인이 발의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이 겨냥한 것이 바로 이 격차입니다. 개정안의 이름은 '인가 간주제'. 지자체가 법정 기한 안에 인가 여부를 처리하지 않으면, 기한이 끝난 날의 다음 날에 인가한 것으로 본다는 조항(안 제78조제3항)을 새로 넣자는 내용입니다. 조합이 서류를 늦게 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서류가 들어간 뒤의 이야기입니다.
60일과 507일 사이
현행 도시정비법은 시장·군수 등이 사업시행계획인가와 관리처분계획인가 신청을 받은 날부터 60일 이내에 인가 여부를 결정해 통보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황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도시정비법이 적용된 사업장 100곳의 관리처분계획인가는 최장 507일이 걸렸습니다.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이 적용된 127곳의 사업시행계획인가도 최장 284일이 소요됐습니다.
507일은 1년 5개월입니다. 법이 정한 기한의 여덟 배가 넘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에 대한 답은 단순합니다. 기한을 넘겨도 제재 규정도, 간주 규정도 없기 때문입니다. 60일은 사실상 훈시규정에 가깝게 작동해 왔습니다. 황 의원은 "법정 인가 기한이 명시돼 있는데도 현장에서는 행정 지연으로 사업비가 늘고 주택 공급이 뒤로 밀리는 고통을 조합원과 국민이 그대로 떠안고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지연은 어떻게 분담금이 되는가
관리처분계획인가는 정비사업에서 가장 무거운 관문입니다. 이 인가가 나야 조합원의 권리가액과 분담금이 확정되고, 세입자의 거주권이 종료되며, 이주와 철거, 착공으로 이어집니다. 인가가 멈추면 그 뒤의 모든 일정이 함께 멈춥니다.
문제는 일정만 멈추고 비용은 멈추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조합이 끌어다 쓴 사업비 대출의 이자는 매일 붙습니다. 이주비 대출 이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공 계약서에 흔히 들어가는 물가변동 조항은 시간이 흐를수록 공사비를 밀어 올립니다. 이렇게 늘어난 비용은 결국 비례율을 낮추고, 조합원 분담금으로 돌아옵니다. 처음 추산할 때 수천만 원이던 추가분담금이 관리처분 단계에서 억 단위로 바뀌었다는 사례가 드물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법안이 바꾸는 것, 바꾸지 못하는 것
인가 간주제가 도입되면 행정 지연에 처음으로 비용이 생깁니다. 기한을 넘기면 인가가 자동으로 성립하므로, 지자체는 60일 안에 판단을 끝내야 할 실질적 이유를 갖게 됩니다.
다만 두 가지는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이 법안은 아직 발의 단계입니다. 국회 통과 여부도, 시행 시점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둘째, 기한의 기산점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실효성을 좌우합니다. 실무에서는 보완 요구와 반려가 반복되며 '접수일'이 뒤로 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간주제가 있어도 시계가 늦게 출발하면 효과는 줄어듭니다. 국회 심사 과정에서 이 부분이 어떻게 다듬어지는지가 관전 포인트입니다.
그리고 인가가 빨라진다고 사업성이 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인가가 몰리면 이주 수요가 한꺼번에 쏟아져 전세시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함께 나옵니다. 속도는 공급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실수요자와 투자자가 확인할 것
첫째, 관심 있는 구역이 있다면 관리처분계획인가 '신청일'과 현재 상태를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서울은 정비사업 정보몽땅(cleanup.seoul.go.kr)에서 사업장별 추진 단계를 조회할 수 있습니다. 신청 후 몇 개월이 지났는지, 보완 요구가 몇 차례 있었는지가 실질적인 지연 위험을 보여줍니다.
둘째, 조합의 사업비 대출 잔액과 이자 부담, 시공 계약의 물가변동 조항을 총회 자료에서 확인하십시오. 지연 기간이 길수록 분담금 변동 폭이 커집니다.
셋째, 관리처분계획인가 이후에는 투기과열지구에서 조합원 지위 양도가 원칙적으로 제한됩니다. 입주권 매수를 검토한다면 매도인의 양도 허용 요건부터 따져야 합니다. 인가 시점은 시세뿐 아니라 거래 가능 여부 자체를 가르는 분기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법안을 호재로 앞질러 반영하지 않기를 권합니다. 아직 조문 하나가 발의됐을 뿐입니다. 507일이라는 숫자가 드러난 것 자체는 의미가 있지만, 그 숫자가 60일로 줄어드는 일은 국회를 통과한 다음의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