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구역을 누가 지정할 것인가. 언뜻 행정 조직도 안의 문제처럼 보이는 이 물음이, 지금 재개발·재건축 시장에서 가장 시끄러운 쟁점이 됐습니다. 시·도지사가 쥐고 있던 정비구역 지정 권한을 국토교통부 장관에게도 부여하는 도시정비법 개정안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계류돼 있는데, 이 법안에 반대한 것이 다름 아닌 국토부였습니다. 여기에 반대 국민청원이 5만4800명을 넘기며 지난 7월 17일 상임위 심사 요건을 채웠습니다. 그리고 지난 7월 27일, 김윤덕 국토부 장관은 국민 대토론회에서 민간 정비사업 용적률 상향에 대해 뜻밖의 신중론을 꺼냈습니다.
장관이 말한 '멸실 효과'
7월 27일 김 장관의 발언은 이렇게 요약됩니다. "정비사업을 할 경우 집을 없애는 멸실 효과가 있어 오히려 주택 가격을 올리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재개발·재건축은 짓기 전에 먼저 부숩니다. 이주와 철거 기간 동안 기존 주택은 시장에서 사라지고, 새 아파트는 4~5년 뒤에나 나옵니다. 서울 곳곳의 정비구역이 비슷한 시기에 이주에 들어가면 그 공백이 전월세 시장을 먼저 압박합니다. 장관의 신중론은 민간 공급에 소극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착공 순서와 이주 물량 조절을 공급 대책의 앞자리에 두겠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같은 자리에서 그린벨트 해제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한다고 했고, 비아파트 활성화 대책도 준비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권한을 주겠다는 법, 받지 않겠다는 부처
계류 중인 개정안은 지난 1월 안태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것으로, 정비구역 지정이 지체돼 사업에 중대한 차질이 생기거나 우려될 때 국토부 장관이 직접 정비구역을 지정하거나 해제할 수 있게 하는 내용입니다. 심의도 지방도시계획위원회가 아닌 중앙도시계획위원회에서 받을 수 있도록 열어뒀습니다. 별도로 국토부 장관이 같은 시·도 안의 토지거래허가구역까지 지정할 수 있게 하는 부동산거래신고법 개정안도 함께 논의되고 있습니다.
취지는 분명합니다. 지정 권한이 광역단체장에게 몰려 있어 사업이 늦어진다는 지적이죠.
그런데 국토부는 검토보고서에서 '신중 검토' 의견을 냈습니다. 사실상의 반대입니다. 국토부 장관과 특별시·광역시장이 정비구역 지정권을 중첩적으로 행사하면 행정 혼선 탓에 오히려 사업이 지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신 지방도시계획위원회 심의가 장기간 이뤄지지 않을 경우 구청장 등이 장관에게 보고하고, 장관이 지정권자에게 심의를 요청해 일정을 협의하도록 하는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권한을 가져오는 대신 재촉할 통로만 만들자는 쪽입니다.
서울시도 의견서를 통해 지정 권한 집중이 병목이라는 근거가 없으며, 장관이 지정에 나설 경우 불확실성이 오히려 커진다고 맞섰습니다. 반대 청원에 모인 5만4800여 명의 논거도 비슷합니다. 지역 특수성을 무시한 획일적 통제, 현장 대응 지연, 정책 공백에 따른 시장 혼란입니다.
소유자와 투자자는 무엇을 봐야 하나
첫째, 내 구역이 어느 단계인지부터 확인하십시오. 이번 논쟁은 정비구역 '지정' 이전 단계, 즉 후보지 선정과 정비계획 입안 구간에만 직접 닿습니다. 이미 조합설립인가나 사업시행인가를 넘긴 구역이라면 법안 통과 여부와 무관하게 기존 일정대로 움직입니다.
둘째, 속도 기대를 미리 가격에 반영하지 마십시오.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국토부 스스로 중첩 권한의 혼선을 경고한 상황입니다. 국토부 대안대로 '심의 요청권' 수준에서 정리되면 체감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습니다. 아직 상임위 심사 단계라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 이미 확정된 완화 조치가 훨씬 실질적입니다. 준공 30년 이상 단지는 재건축진단 없이 사업에 착수하고 사업시행계획인가 전까지만 진단을 마치면 되는 패스트트랙, 도시계획·건축·경관·교통·환경영향평가를 한 번에 처리하는 통합심의, 재건축조합 설립 동의율 75%→70% 하향, 상가 등 복리시설 동의율 과반→3분의 1 완화가 그것입니다. 논쟁 중인 법안보다 이쪽이 내 구역 일정에 먼저 반영됩니다.
넷째, 이주 시점을 보수적으로 잡으십시오. 장관의 '멸실 효과' 발언은 이주 물량 조절이 정책 변수로 올라섰다는 뜻입니다. 이주 개시가 계획보다 늦어질 가능성을 자금 계획에 미리 넣어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정비사업의 속도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누가 도장을 찍느냐가 아니라, 도장을 찍기까지의 절차가 몇 개인가입니다. 권한을 한 곳 더 늘리는 것이 절차를 줄이는 일인지, 하나 더 얹는 일인지 — 국회의 판단이 남았습니다. 그 결론이 나기 전까지 투자 판단의 기준은 법안이 아니라 내 구역의 실제 진도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