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하나가 조용히 방향을 바꿨습니다. 올해 1~4월 국내 거주자가 '부동산 취득'을 목적으로 해외에 보낸 돈은 2억1030만 달러, 원화로 약 3191억 원입니다. 지난해 연간 송금액 5억9050만 달러(약 9061억 원)의 35.6%를 넉 달 만에 채운 셈입니다. 지난해는 그 자체로 7년 만의 최대치였습니다. 그 기록을 올해가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4개월에 3191억, 속도가 달라졌습니다
흐름을 연도별로 놓고 보면 성격이 분명해집니다. 2020년 3억8960만 달러에서 2021년 5억8900만 달러로 뛰었다가, 2022년 5억4090만 달러, 2023년 3억6680만 달러로 내려앉았습니다. 그리고 2024년 4억1950만 달러, 2025년 5억9050만 달러로 다시 방향을 틀었습니다. 2년 만에 61% 늘어난 겁니다.
주목할 대목은 반등의 시점입니다. 이 돈이 다시 불어나기 시작한 구간은 국내 다주택·비거주 주택에 대한 규제가 촘촘해진 시기와 겹칩니다. 취득세 중과, 대출 한도 축소, 보유세 부담이 층층이 쌓이는 동안, 국내 주택 수에 잡히지 않는 자산으로 눈을 돌린 수요가 통계로 드러난 것으로 해석됩니다.
다만 이 숫자를 읽을 때 전제를 하나 챙겨야 합니다. 이것은 '취득 목적으로 신고된 송금액'입니다. 실제 거래 금액 전체도, 투자 성과도 아닙니다. 현지 대출을 끼고 산 경우나 이미 해외에 있던 자금으로 산 경우는 여기에 잡히지 않습니다. 즉 이 3191억 원은 흐름의 방향을 보여주는 지표이지, 규모의 전부가 아닙니다.
미국이 절반, 그런데 눈에 띄는 건 일본이었습니다
행선지를 보면 미국이 1억1200만 달러(약 1719억 원)로 절반을 조금 넘습니다. 자녀 유학, 장기 체류, 가족 거주가 얽힌 전통적인 수요입니다. 이 비중 자체는 새롭지 않습니다.
새로운 것은 2위입니다. 일본이 3600만 달러(약 552억 원)로, 넉 달 만에 지난해 연간 송금액(7770만 달러)의 46.3%에 도달했습니다. 단순 환산하면 연간 기준으로 지난해의 1.4배 속도입니다. 그 뒤로 아랍에미리트 1390만 달러(약 213억 원), 호주 760만 달러(약 117억 원), 말레이시아 250만 달러, 캐나다 220만 달러가 이어집니다.
일본으로 향한 돈의 배경으로는 엔화 약세, 외국인 취득에 별도 제한이 없는 제도, 도심 임대수익률이 함께 거론됩니다. 다만 엔저는 매입 시점의 유리함일 뿐, 매도 시점에는 정확히 반대로 작동합니다. 엔화로 산 자산을 엔화로 팔아 원화로 되가져올 때, 환율이 회복되어 있다면 현지 통화 기준 수익이 원화 기준 손실로 바뀔 수 있습니다. 취득 단계의 환차익 기대와 회수 단계의 환차손 위험은 같은 크기입니다.
주택 수에서 빠진다는 것, 그리고 빠지지 않는 것
해외 부동산이 국내 주택 수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은 사실입니다.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이 아니고, 국내 재산세도 붙지 않으며, 국내 주택을 팔 때 다주택 중과 판정에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여기까지가 흔히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빠지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 양도차익은 과세됩니다. 국외 부동산을 팔아 생긴 이익은 국내에서 양도소득세 대상이며, 현지에 낸 세금은 외국납부세액공제로 조정하지만 국가별 과세 체계와 환율 차이 때문에 추가 부담이 생길 수 있습니다. 국내 1주택 비과세 같은 장치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둘째, 신고 의무가 따라붙습니다. 취득 단계에서는 외국환은행에 부동산 취득 신고를 해야 하고, 국내에서 조달한 자금이 섞이면 절차가 달라집니다. 보유 단계에서도 일정 규모 이상이면 취득·보유·처분 명세를 세무당국에 제출해야 하며, 정당한 사유 없이 기한을 넘기면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주택 수에서 빠진다'와 '당국이 모른다'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셋째, 보유 비용입니다. 미국은 주(州)에 따라 재산세율이 상당하고, 일본은 주거용 취득세와 등록 관련 세금이 매입 시점에 한 번 발생합니다. 여기에 관리비, 현지 임대관리 수수료, 공실 기간이 더해집니다. 임대수익률을 볼 때는 이 비용을 뺀 뒤의 숫자여야 합니다.
무엇을 봐야 하는가
실수요와 투자 수요를 구분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자녀 교육이나 거주 계획처럼 실제 사용 목적이 있는 경우와, 국내 규제를 우회하기 위한 자산 이전은 판단 기준이 다릅니다. 후자라면 다음 세 가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하나, 회수 시나리오입니다. 현지에서 팔릴 때까지 걸리는 기간, 매도 시 현지 세금, 원화 환산까지 계산한 뒤의 수익입니다. 해외 부동산은 국내 아파트보다 환금성이 낮은 자산입니다.
둘, 환율 구간입니다. 지금의 환율이 유리해서 사는 것이라면, 그 유리함은 파는 시점에 불리함으로 되돌아올 수 있습니다.
셋, 신고와 기록입니다. 취득·보유·처분 각 단계의 의무를 처음부터 문서로 챙겨두는 편이, 몇 년 뒤 과태료와 가산세를 감당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합니다.
돈이 국경을 넘는 속도는 규제의 강도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합니다. 다만 규제를 피한 자리에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국내에서는 세금이, 해외에서는 환율과 환금성이 청구서를 보냅니다. 어느 쪽 청구서를 감당할 수 있는지가 판단의 출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