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8월 23일 제10차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서울의 500가구 이하 재개발·재건축에 한해 정비구역 지정 권한을 서울시장에서 구청장으로 넘기는 제도 개선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사업 초기 절차를 줄여 속도를 내겠다는 취지입니다. 그런데 서울시가 내놓은 반박 자료의 숫자가 흥미롭습니다. 시가 정비구역 지정 심의에 쓰는 시간은 평균 84일, 통합심의는 32일. 합쳐서 약 4개월이고, 이는 통상 12년 걸리는 정비사업 전체 기간의 2.7%입니다. 가결률은 97%입니다. 반면 500가구 이하 사업장은 서울 전체 472곳(약 48만4000가구) 가운데 193곳, 41%에 이릅니다.
무엇이 어떻게 바뀌나
지금은 자치구청장이 정비계획을 입안해 주민공람과 구의회 의견청취를 거친 뒤, 서울시장에게 정비구역 지정을 신청합니다. 이후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해야 시장이 구역을 지정·고시합니다. 입안은 구청, 지정은 시청으로 나뉘어 있는 구조입니다.
당정안은 이 마지막 단계를 구청장에게 넘깁니다. 500가구 이하라면 정비계획 수립부터 구역 지정까지 자치구 안에서 끝나게 됩니다. 시청 상정을 기다리고, 보완 요구를 주고받고, 위원회 일정에 맞추는 시간이 사라진다는 계산입니다.
당장 영향을 받는 곳은 신속통합기획 대상 500가구 이하 132곳 중 18곳, 6087가구로 집계됐습니다. 재개발 13곳 4294가구, 재건축 5곳 1793가구입니다. 이 가운데 17곳은 아직 입안 단계이고 주민공람까지 간 곳은 1곳뿐입니다. 즉 이번 조치는 이미 진행 중인 사업을 앞당기는 것이 아니라, 이제 막 출발선에 선 사업장의 초반 구간을 짧게 만드는 성격에 가깝습니다.
서울시가 반대하는 세 가지 이유
첫째는 '쪼개기'입니다. 500가구 이하만 절차가 쉬워지면, 대단지를 500가구 단위로 나눠 신청하려는 유인이 생깁니다. 서울시정비사업연합회 측은 인접 지역과의 연계 개발보다 개별 추진이 우선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2000년대 초 서울에서는 1~2개 동짜리 이른바 '나홀로아파트'가 급증했습니다. 2000년 동시분양 물량의 39.2%, 2001년에는 47%가 소규모 단지였고, 일조권 침해와 주차난이 뒤따랐습니다.
둘째는 기반시설입니다. 도로·공원·주차장은 물론 어린이집, 주민센터, 도서관처럼 일정 규모 이상이어야 확보되는 시설들이 있습니다. 사업이 잘게 나뉘면 어느 구역도 이를 떠안지 않게 됩니다.
셋째는 기준의 일관성입니다. 공공기여 비율과 용도 기준이 자치구마다 달라지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정비 기준이 갈릴 수 있습니다. 서울시는 특혜 시비와 투기 문제를 우려했고, 건축·교통·환경 등 9개 분야를 아우르는 통합심의를 감당할 전문 인력이 자치구에 충분한지도 문제로 지적했습니다.
전문가 지적 중에는 결이 다른 것도 있습니다. 인허가 권한은 그대로 둔 채 지정 권한만 넘기면, 구역 지정 이후 단계에서 오히려 사업이 멈출 수 있다는 겁니다. 문을 열어주고 복도는 막아두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실수요자·투자자가 봐야 할 것
첫째, 내 사업장이 500가구 이하인지입니다. 이 선 하나로 적용 여부가 갈립니다. 다만 500가구는 계획상 세대수이므로, 계획 변경 과정에서 경계가 조정될 여지도 함께 봐야 합니다.
둘째, 구역이 나뉘는지 여부입니다. 하나의 생활권이 여러 구역으로 쪼개지면 초기 속도는 빨라져도 기반시설 부담과 향후 단지 가치에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조합설립 이전 단계라면 구역 경계안을 특히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셋째, 법 개정 일정입니다. 이 조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당정 합의는 방향일 뿐 아직 시행이 확정된 제도가 아니며, 개정안에 지정 권한만 담기는지 인허가 권한까지 포함되는지에 따라 체감 효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넷째, 절약되는 시간의 크기입니다. 서울시 계산대로라면 이번 조치로 줄어드는 구간은 4개월 남짓입니다. 서울시는 별도로 '신속통합기획 2.0' 공정관리 매뉴얼을 통해 평균 18.5년인 사업 기간을 12년 이내로 줄이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정비사업의 진짜 병목은 구역 지정 심의보다 조합 내부 갈등, 관리처분, 이주와 공사비 협상 쪽에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권한이 가까워지면 결정은 빨라집니다. 다만 빨라진 결정이 반드시 좋은 결정은 아닙니다. 이번 논쟁의 핵심은 '속도냐 계획이냐'이고, 그 답은 결국 개별 구역의 경계선 위에서 드러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