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관리 목표를 1.5%에서 3%로 높였습니다. 8·13 대책에 담긴 내용입니다. 한 달여가 지나자 은행들이 막아 두었던 창구를 차례로 다시 열고 있습니다. 그런데 숫자를 보면 조금 이상합니다. 9월 14일 기준 5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620조6838억 원으로 8월 말보다 5893억 원 줄었습니다. 문은 열렸는데 잔액은 줄어든 셈입니다. 가을 이사철에 집을 사거나 전세를 옮길 계획이 있는 분이라면 이 차이가 왜 생겼는지 알아 두셔야 합니다.
창구는 다시 열리고 있습니다
글로벌이코노믹 보도(9월 18일)에 따르면 은행별 재개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신한은행: 9월 1일 대출모집인 채널 접수를 다시 열었지만 이틀 만에 한도를 모두 써서 중단했습니다. 이후 만 39세 이하를 대상으로 특별한도 5000억 원을 새로 배정했습니다. 9월 18일과 10월 2일에 2500억 원씩 나눠 풀고, 실행 시기는 11월 6~18일입니다(파이낸셜뉴스). - 하나은행: 모집인을 통한 전세대출·주담대의 11월 실행분 접수를 다시 받습니다. - IBK기업은행: 15일부터 변동금리 주담대와 다른 은행 대출을 옮기는 대환대출을 재개했습니다. - NH농협은행: 변동금리 주담대와 대환대출 제한을 풀고 모집인 신규 접수를 재개했습니다. - KB국민은행은 주택 구입용 주담대의 1인당 한도 3억 원을 유지하고 있고, 우리은행은 지점별 취급 한도를 계속 운영합니다.
신한은행 한도가 이틀 만에 바닥났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대출을 원하는 사람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창구가 좁았을 뿐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잔액은 왜 줄었을까
첫째, 접수와 실행 사이에 시간차가 있습니다. 하나은행은 11월 실행분을 받고 있고, 신한은행 특별한도도 11월에 실행됩니다. 지금 접수된 대출은 두 달쯤 뒤에야 잔액에 잡힙니다. 9월 중순 통계에는 아직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둘째, 늘어난 한도 대부분이 일반 주담대 몫이 아닙니다. 목표를 3%로 높이면서 생긴 추가 공급 여력은 약 30조 원입니다. 이 가운데 일반 주담대와 신용대출에 돌아가는 몫은 6조~8조 원 정도로 추산됩니다(파이낸셜투데이). 나머지는 이주비·중도금·잔금 같은 집단대출과 청년·서민 정책자금에 먼저 배정됩니다. 5대 은행이 일반 주담대로 추가 공급할 수 있는 규모는 약 7조5000억 원으로 알려졌습니다(더팩트).
셋째, 규제의 틀은 그대로입니다. 규제지역 LTV 40%, 은행권 DSR 40%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한도가 늘어도 한 사람이 빌릴 수 있는 금액은 소득과 집값에 묶여 있습니다.
전 금융권으로 넓혀 보면 흐름이 조금 다릅니다. 8월 가계대출은 2조6000억 원 늘어 증가 폭이 줄었지만, 주담대는 4조3000억 원 늘어 전월(3조6000억 원)보다 증가 폭이 커졌습니다. 전체 대출은 억누르는 가운데서도 집을 사기 위한 대출 수요는 살아 있다는 신호입니다.
금리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대출량 규제가 풀리는 사이 금리는 오히려 올랐습니다. 한국은행은 7월과 8월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올려 3.00%로 만들었습니다(KB주택시장 리뷰 9월호). 숭실대 손재성 교수는 "은행의 대출 재개는 영업 정상화로 볼 수 있지만, 금리 부담과 신용위험 때문에 실제로 늘어나는 폭은 제한적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시장도 비슷하게 움직입니다. 부동산114 기준으로 9월 셋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0.03% 올라 전주(0.19%)보다 상승 폭이 크게 줄었습니다. 반면 전셋값은 0.17% 올라 강세가 이어졌습니다. KB부동산 전망지수도 107.2로 두 달 연속 떨어졌습니다. 대출 창구는 넓어졌지만 매수 심리는 아직 따라오지 않고 있습니다.
실수요자가 확인할 것
1. 실행 월부터 확인하세요. 지금 받는 접수는 대부분 11월 실행분입니다. 잔금일이 10월이라면 이번 한도가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은행에 실행 가능한 날짜부터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2. 한도는 월 단위로 소진됩니다. 신한은행 사례처럼 배정 첫날 며칠 안에 끝날 수 있습니다. 다음 배정일(신한은행은 10월 2일)에 맞춰 서류를 미리 준비해 두시는 편이 좋습니다. 3. 변동금리만 먼저 열린 곳이 많습니다. 기업은행과 농협은행이 재개한 상품은 변동금리형입니다. 기준금리가 오르는 국면에서는 금리 재산정 주기와 가산금리를 꼭 비교하세요. 4. 갭투자 수요에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추가 한도는 실수요자와 청년, 집단대출에 먼저 배정되고 LTV·DSR 규제도 그대로입니다. "대출이 풀렸다"는 말만 듣고 투자 계획을 세우면 계산이 틀어질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총량 목표 상향은 대출 수도꼭지를 여는 조치라기보다 막혀 있던 배관 일부를 뚫은 조치에 가깝습니다. 효과가 통계에 나타나는 시점은 11월입니다. 그때 주담대 잔액과 서울 매매가격이 함께 움직이는지 지켜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