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아파트를 사는 일은 집을 사는 게 아니라 시간을 사는 일입니다. 문제는 그 시간의 길이가 단지마다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서울 정비사업 598곳을 들여다본 최근 분석에서, 준공까지 마친 아파트지구 재건축의 평균 사업기간은 13.4년이었습니다. 같은 기간 공동주택 재건축은 8.82년이었습니다. 같은 '재건축'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둘 사이에는 4.6년이라는 간극이 있었습니다. 40대에 산 집을 50대에 들어가느냐, 60대에 들어가느냐의 차이입니다.
18.5년은 어디서 새는가
서울시가 집계한 정비사업 전체 평균은 18.5년입니다. 이 숫자를 단계별로 쪼개면 어디서 시간이 새는지 보입니다. 정비구역으로 지정되기까지 2.5년, 추진위원회를 거쳐 조합을 세우는 데 3.5년, 사업시행인가와 관리처분인가를 받고 이주를 마치는 데 8.5년, 그리고 착공에서 준공까지 4년입니다.
눈여겨볼 것은 공사 기간 4년이 전체의 5분의 1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나머지 14.5년은 삽을 뜨기 전에 흘러갑니다. 아파트지구 재건축이 유독 오래 걸린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개발기본계획이라는 별도의 틀을 거쳐야 하고, 대지 규모가 크며, 소유자 수가 많을수록 동의를 모으고 이해를 조정하는 시간이 기하급수로 늘어납니다. 사업 속도는 용적률이 아니라 사람 수가 결정하는 셈입니다.
서울시는 이 18.5년을 12년으로 줄이겠다고 밝혔습니다. 구역 지정에서 조합 설립까지 약 3년, 사업시행인가에서 이주까지 5년, 공사 4년이라는 계산입니다. 이를 위해 사전이행 11개, 병행이행 5개, 규제혁신 8개를 묶은 24개 단축 방안을 매뉴얼로 내놨습니다. 감정평가와 분양가 책정을 미리 시작하고, 사업시행인가 후 7개월 안에 감정평가, 14개월 안에 관리처분계획 수립이라는 처리기한도 못박았습니다. 평균 3년 걸리던 사업시행인가-관리처분인가 구간을 1년 9개월로 줄이는 것이 목표입니다.
계획과 현장 사이
다만 현장의 반응은 갈립니다. 검증 기간을 줄이자는 대목에서 한국부동산원은 "검증 지연은 절차 탓이 아니라 서류 미비 탓"이라며, 이미 법정 30일 안에 처리하고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정비업계에서도 아직 확정되지 않은 내용을 공람 단계에서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인가 과정에서 분양 대상자가 바뀌면 비례율까지 연동돼 검증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반대로 속도가 실제로 붙은 사례도 있습니다. 은마아파트는 정비계획이 결정된 뒤 7개월 만인 지난 7월 사업시행계획인가를 받았습니다. 제도가 바뀌면 빨라질 수 있다는 증거이자, 그 혜택이 모든 구역에 고르게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실수요자라면 역산하십시오
그래서 봐야 할 것은 '몇 년 걸린다더라'가 아니라 '내가 사려는 단지는 지금 어느 단계인가'입니다. 기준은 단순합니다.
5년 안에 입주해야 한다면 관리처분인가가 끝난 단지만 후보입니다. 이 단계면 분담금 윤곽이 나왔고 이주와 철거가 임박했습니다. 10년을 기다릴 수 있다면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단지까지 넓힐 수 있습니다. 15년 이상을 볼 수 있다면 정비구역 지정 단계도 선택지가 됩니다. 반대로 말하면, 추진위 단계 물건을 사면서 "5년 뒤 입주"를 계산하는 것은 통계와 싸우는 일입니다.
단계별 확인은 서울시 정비사업 정보몽땅에서 무료로 됩니다. 조합 설립일, 인가일, 총회 안건까지 공개돼 있습니다. 여기에 두 가지를 더 보십시오. 하나는 소유자 수입니다. 많을수록 느려집니다. 다른 하나는 공사비 증액 협상 이력입니다. 관리처분인가를 받고도 시공사와 공사비를 다시 다투는 구역은 이주가 멈춥니다. 최근 몇 년 사업이 늦어진 이유는 인허가보다 이쪽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12년은 목표이고, 13.4년은 결과입니다. 매수 판단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의 분포 위에서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