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파트 열쇠를 받아 이삿짐을 풀었는데, 정작 그 집이 아직 '내 집'으로 등기되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준공과 입주가 끝난 재건축 단지에서 뒤늦게 공사비 청구서가 날아들고, 이를 반영한 관리처분계획 변경이 조합원 총회에서 부결되면서 인가 절차가 멈춰 선 것입니다. 서울 송파구 잠실르엘(미성·크로바 재건축)은 올 초 입주가 시작됐지만 관리처분 변경안이 조합원 절반의 동의를 얻지 못해 부결됐고, 인가를 받지 못한 탓에 소유권 등기와 재산권 행사가 막힌 상태로 알려졌습니다. 강남구 대치동 디에이치대치에델루이에서는 시공사가 기존 2억원대이던 추가 분담금을 최대 11억7,000만원까지 올려 제시하면서, 신용공여 중단과 연 15% 지연 가산금리, 열쇠 불출 중단 같은 초강수까지 등장했습니다.
왜 하필 '다 지어놓고' 터지나
핵심은 시차입니다. 공사도급계약은 대개 착공 몇 년 전에 맺어지는데, 그 사이 자재비·인건비·금융비용이 한꺼번에 뛰었습니다. 몇 해 전 3.3㎡당 600만원대였던 공사비가 올해 들어 1,000만원을 예사로 넘기고, 서울 성북구 안암2구역은 조합원 1인당 1억~4억원의 추가 분담금을 통보받았습니다. 용산 르엘이촌에서는 시공사가 3.3㎡당 공사비를 71% 올려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과거의 공사비 갈등이 '착공 전 협상' 단계에서 벌어졌다면, 지금은 이미 건물을 다 올린 준공·입주 시점에 청구서가 도착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시공사 입장에서는 공사를 마치고도 대금을 회수하지 못할 위험이 커졌고, 조합원 입장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수억 원의 추가 부담을 마지막 순간에 마주하게 됩니다. 청담르엘(청담삼익)의 경우 시공사가 주장하는 미수 채권이 공사비·대여금·지연이자를 합쳐 1,500억원 안팎에 이르고, 그 갈등 끝에 조합장이 해임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진짜 리스크는 '분담금'이 아니라 '등기'다
많은 분들이 재건축 리스크를 '분담금이 얼마 오르느냐'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 국면에서 더 무서운 것은 시간입니다. 늘어난 공사비를 반영하려면 관리처분계획을 변경해야 하고, 이 변경안은 조합원 총회에서 일정 비율 이상의 동의를 얻어 지자체 인가를 받아야 효력이 생깁니다.
여기서 부결이 나면 어떻게 될까요. 아파트는 완공됐는데 변경 인가가 없으니 소유권 이전 등기가 되지 않고, 등기가 안 되면 매매도, 담보 대출도, 전세 임대도 사실상 막힙니다. 입주는 했지만 법적으로는 '내 재산'이라 말하기 어려운 어정쩡한 상태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시공사가 지연이자를 매기거나 입주를 제한하면, 분담금 다툼이 결국 개별 조합원의 자금 압박으로 번집니다.
무엇을 봐야 하나
첫째, 입주권이나 재건축 물건을 살 계획이라면 '남은 분담금'만 볼 것이 아니라 관리처분계획 변경 총회가 예정돼 있는지, 있다면 예상 증액 규모와 동의율 전망을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변경 부결 가능성이 있는 단지는 입주 후에도 등기가 지연될 수 있습니다.
둘째, 조합이 공사비 증액에 대해 한국부동산원 등의 공사비 검증을 거쳤는지, 국토부 표준공사계약서에 따른 증액 근거가 명확한지 살펴야 합니다. 검증 없이 통보된 증액은 다툼의 소지가 큽니다.
셋째, 계약서상 지연이자·유치권·신용공여 조항을 확인하세요. 갈등이 길어질수록 이 조항들이 조합원 개인의 부담으로 돌아옵니다. 공사비 급등기의 재건축은 '얼마 버느냐'보다 '언제 온전히 내 것이 되느냐'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화려한 새 단지의 완공 사진보다, 관리처분 변경 총회의 표결 결과를 먼저 확인해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