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0일, 서울시청에서 조금 낯선 회의가 열렸습니다. 김성보 행정2부시장이 25개 자치구 담당자들을 불러 모아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의 진행 상황을 하나씩 점검한 겁니다. '특별 공정촉진회의'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회의 자체가 새로운 건 아닙니다. 새로운 건 누가 주재하느냐입니다. 그동안 정비사업 공정관리를 총괄하던 자리는 건축기획관이었습니다. 국장급입니다. 이 자리가 부시장급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이 회의는 앞으로 매달 열립니다.
행정 조직에서 '직급이 올라갔다'는 건 단순한 인사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떤 문제를 실무 부서가 감당할 수준으로 보지 않는다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등급표에 올라간 재건축 단지들
서울시는 이미 정비사업 구역들을 A·B·C 세 등급으로 나눠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계획보다 빠르면 A, 정상 추진이면 B, 지연되면 C입니다. 학교 성적표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행정의 개입 강도를 정하는 분류표입니다.
시가 밝힌 15차 점검 결과를 보면, 지연 구역인 C등급은 약 20% 줄었고 A등급은 9%, B등급은 11% 늘었습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짚어둘 게 있습니다. 이 수치는 구역 수의 증감률이지, 착공으로 이어진 실적이 아닙니다. C등급에서 벗어났다는 건 서류가 한 단계 진도를 나갔다는 뜻이지, 삽을 떴다는 뜻이 아닙니다.
시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목표 숫자에 있습니다. 2031년까지 주택 31만 호 착공. 서울에서 신규 주택 공급의 대부분은 정비사업에서 나옵니다. 즉 이 목표는 재개발·재건축이 제때 돌아가지 않으면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 숫자입니다.
그런데 도장은 서울시가 찍지 않는다
여기가 이 사안의 핵심입니다. 정비사업 인·허가 절차 중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와 통합심의를 뺀 대부분의 권한은 자치구에 있습니다. 사업시행계획인가도, 관리처분계획인가도 구청장이 냅니다.
그러니까 서울시는 등급을 매기고, 회의를 소집하고, 대책을 논의할 수는 있지만, 정작 결재판에 도장을 찍는 손은 각 구청에 있습니다. 시가 자치구 대상 교육과정을 신설하고, 성과에 따라 재정 인센티브와 표창을 연계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 구조 때문입니다. 명령할 수 없으니 유인을 설계하는 겁니다.
이 방식이 얼마나 통할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구청 입장에서 인가를 서두르지 못하는 이유는 게을러서가 아니라, 주민 민원·소송·조합 내분처럼 서류로 정리되지 않는 문제들이 걸려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진짜 병목은 등급표 바깥에 있다
행정 속도가 빨라진다고 사업이 굴러가는 건 아닙니다. 최근 몇 년간 정비사업을 멈춰 세운 건 대체로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공사비입니다. 자재비와 인건비가 뛰면서 시공사가 증액을 요구하고, 조합원 분담금이 불어나고, 그 지점에서 사업이 정지합니다. 서울시가 별도로 시공사 선정 제도 개선에 착수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둘째, 조합 자체가 없는 구역입니다. 서울 정비사업장 상당수가 아직 조합 설립 이전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분담금 부담이 커지면서 주민 동의를 모으는 일 자체가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조합이 없으면 공정관리표에 올릴 '공정'도 없습니다. 등급표는 이미 궤도에 오른 구역들을 관리하는 도구이지, 출발선에 서지 못한 구역을 끌어올리는 도구가 아닙니다.
실수요자·투자자가 볼 지점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내 구역의 등급을 확인하십시오. 서울시 '정비사업 정보몽땅'(cleanup.seoul.go.kr)에서 구역별 추진 단계를 조회할 수 있습니다. C등급에서 벗어났다는 소식이 들린다면, 그게 어느 단계의 진전인지 — 사업시행인가인지, 관리처분인가인지 — 를 반드시 구분해서 보셔야 합니다.
둘째, 행정 속도와 사업 속도를 혼동하지 마십시오. 인가가 났다는 뉴스에 입주권 호가가 뛰는 일이 반복됩니다. 하지만 관리처분인가 이후에도 공사비 협상이 틀어지면 이주가 시작되지 않습니다. 인가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셋째, 확정된 분담금을 보기 전까지는 판단을 유보하십시오. 사업 속도가 빨라지는 국면일수록 "곧 된다"는 기대가 가격에 먼저 반영됩니다. 그 기대와 실제 분담금 사이의 간격이 이 시장에서 손실이 발생하는 자리입니다.
서울시가 부시장을 앞세운 건 분명 의지의 표현입니다. 다만 의지가 해결할 수 있는 건 서류의 속도이고, 사업의 속도를 정하는 건 여전히 돈과 합의입니다. 매달 열릴 이 회의가 등급표를 정리하는 자리에 그칠지, 공사비와 조합 갈등이라는 진짜 병목을 건드릴지 — 앞으로 몇 달이 그 답을 보여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