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재건축을 기다리는 분들에게 올여름 서울에서는 두 개의 시계가 동시에 돌고 있습니다. 하나는 빨라지고, 하나는 무거워집니다. 6·3 지방선거가 끝난 뒤 서울 자치구들은 앞다퉈 정비사업 전담조직을 만들고 인허가 기간을 줄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7월, 성수4지구 재개발 조합이 시공사 선정 총회에 올린 예정 공사비는 3.3㎡당 1140만원이었습니다. 행정은 사업을 앞당길 수 있지만, 조합원이 낼 돈을 깎아주지는 못합니다. 지금 정비구역을 보고 계신다면 봐야 할 숫자가 바뀌었습니다.
구청장의 성적표가 된 재건축
선거 이후 자치구들의 움직임은 이례적으로 일사불란합니다. 은평구는 구역 지정부터 준공까지 인허가를 한 창구에서 처리하는 '신속 지원 패키지'를 내놨고, 강동구는 도시개발 조직을 구청장 직속으로 끌어올려 명일동 1만2000가구 재건축에 집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성북구는 장위·월곡·길음 일대 138개 사업장을 묶어 정비사업을 구정 최우선 과제로 올렸고, 양천구는 목동 14개 단지를 위한 통합 행정지원과 이주지원센터를 예고했습니다.
서울시도 판을 깔았습니다. 자치구별로 사업 기간을 얼마나 단축했는지, 인허가를 얼마나 빨리 처리했는지를 따지는 종합평가제를 도입하고, 성적이 좋은 구에는 예산과 인력을 더 주기로 했습니다. 재건축이 구청장의 성적표가 된 셈입니다.
이 흐름 자체는 실수요자에게 나쁜 소식이 아닙니다. 서울 정비사업의 고질병은 늘 시간이었습니다. 조합 설립부터 착공까지 평균 8년 반이 걸리고, 2015년 이전에 조합을 세운 75곳 중 49곳이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했습니다. 관리처분인가까지 받아놓고 멈춰 선 곳만 18곳입니다. 행정이 병목을 풀어주면 이 정체가 조금은 뚫립니다.
그런데 단가가 먼저 달렸습니다
문제는 속도가 붙은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청구서입니다. 정비사업 공사비가 3.3㎡당 1000만원을 넘어선 것은 2024년이었는데, 그 후 2년 만에 시장은 다시 한 층 올라섰습니다. 올해 6월 압구정2구역 1150만원, 7월 여의도 대교아파트 1120만원, 성수전략정비구역 1지구 1132만원·2지구 1160만원. 최근 입찰공고를 낸 여의도 목화아파트는 1370만원으로, 2024년 신반포22차가 세운 1300만원 기록마저 넘겼습니다.
이 숫자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공사비가 평당 100만원 오르면 조합원 한 사람의 추가 분담금은 1억원 안팎씩 늘어난다는 것이 업계의 경험칙입니다. 5년 전 3억~4억원 수준이던 조합원 평균 분담금이 지금은 그 두 배를 넘어섰습니다. 강남권에서는 추가 분담금이 10억원대로 통보돼 조합이 흔들리는 사례도 나왔습니다.
행정 절차가 빨라진다는 것은 사업 기간이 줄어 금융비용이 덜 든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분담금 확정 시점'이 앞으로 당겨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막연히 미뤄뒀던 계산서가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봐야 하나
첫째, 단계보다 단가입니다. "관리처분 앞두고 있다", "사업시행인가 났다" 같은 진도 표현에 마음이 놓이기 쉽지만, 실제 손익은 시공사 계약서의 3.3㎡당 공사비에서 갈립니다. 조합이 몇 년 전 산정한 예정 공사비를 아직 그대로 쓰고 있다면, 그 숫자는 십중팔구 현실과 다릅니다.
둘째, 분담금은 총회 의결로 확정됩니다. 법원은 조합원에게 추가 분담금 납부 의무가 확정적으로 생기려면 관리처분계획 변경 인가가 있거나, 최소한 총회에서 조합원별 분담 내역이 명시적으로 의결돼야 한다고 봅니다. 뒤집어 말하면, 총회 소집 통지서에 적힌 분담 내역이 여러분이 실제로 마주할 금액입니다. 그 서류를 읽지 않고 사업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셋째, 입주권 프리미엄은 분담금을 뺀 뒤에 봐야 합니다. 조합원 분양가와 일반분양가의 차이가 아무리 커 보여도, 그 사이에 추가 분담금이 끼어 있습니다. 프리미엄만 보고 계산기를 두드리면 실제 취득 원가를 놓칩니다.
넷째, 자금 조달 계획입니다. 이주비 대출과 분담금 납부 시점이 겹치는 구간이 정비사업의 가장 취약한 지점입니다. 서울시가 이주비 융자 지원을 늘리고 있는 것도 이 지점에서 사업이 자주 멈춰서기 때문입니다.
행정이 빨라진 것은 분명한 변화입니다. 다만 빨라진 시계가 가리키는 곳에는 더 커진 숫자가 놓여 있습니다. 올여름 정비사업을 들여다보신다면, 언제 되느냐보다 얼마가 드느냐를 먼저 물어보시기 바랍니다.